주석

9세기 말 명주를 기반으로 성장한 궁예는 김주원계 호족과 굴산문(챍山門)의 사원세력을 기반으로 하였다. 궁예의 뒤를 이어 즉위한 태조가 김주원계의 김순식(金順式)을 회유하기 위해 노력한 것을 보면 명주의 호족과 불교세력이 궁예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혹 같은 김주원계의 후손인 범문도 명주와 어떤 관련성이 있지 않을까 추정된다. 명주를 근거로 하고 있던 범문이 여주의 수신을 반란에 끌어들인 이유도 여주가 김주원계의 세력 범위였을 가능성이 높다. 여주는 명주와 함께 반신라 친궁예라는 성향을 보였던 곳으로, 자연 신라 말의 왕실이나 고려의 왕실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지역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