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이규보는 그가 28세 때에 그의 고향인 황려를 거쳐서 상주에 이르기까지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이규보가 황려의 근곡촌(根谷村)에서 유숙하다가 상주로 떠나기 전날 밤 지은 시의 세주(細註)에 “내 전(田)이 있는 곳”이라고 한 데서 여주에 이규보 소유의 가전(家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東國李相國集』 6, 古律詩 六月十一日發黃驪將向尙州出宿根谷村〔予田所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