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망이·망소이 무리들이 농민군을 나누어 동시에 공격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았다. 망이가 이끄는 무리들은 진주로 가고 이광(李光)이 이끄는 또 다른 무리들이 여주로 진격하였을 것이라고 하였다(李貞信, 1991, 『高麗武臣政權期의 農民·賤民 抗爭硏究』,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