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1년(세종 3)~1484년(성종 15), 조선초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경(重卿), 호는 일재(逸齋)·안재(安齋). 지중추부사 염조(念祖)의 아들이다. 송설체(松雪體)의 대가로 해서·행서를 특히 잘 썼으며, 글씨로는 「원각사비(圓覺寺碑)」, 「한계미묘비(韓繼美墓碑)」, 「최항신도비(崔恒神道碑)」 등이 있고, 경복궁 전문(殿門)의 편액과 왕실의 사경(寫經) 등 국가적 서사(書寫)를 많이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