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禪宗)은 불교사상사적인 면에서 상당히 변혁적(變革的)인 사상체계로 이해되고 있다. 교종(敎宗)은 경전(經典)에 의거한 교설(敎說)을 주로 하기에 문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였고, 불교 경전의 번역과 주석(註釋)에 따른 심오한 불교 철학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였다. 그러나 선종은 종조(宗祖)로 이해되고 있는 달마의 ‘편안한 마음으로 벽을 바라본다(安心觀壁)’와 6조(祖) 혜능(慧能)의 ‘문자에 입각하지 않으며 경전의 가르침 외에 따로 전하는 것이 있으니 사람의 마음으로 직접 터득하고, 본연의 품성을 보고 부처가 된다(不立文字 敎外別傳 直指人心 見性成佛)’, 그리고 마조도일(馬祖道一)의 ‘타고난 마음이 곧 부처(自心卽佛)’라는 새로운 인식 하에 그 기초가 마련되었다. 이 같은 선종은 신라 하대로 접어들면서 새로이 대두하던 6두품 및 지방 호족 세력의 지원 속에서 발전되었다. 특히 『고려사』 제10권 선종(宣宗) 1년의 기록에 나온 것과 같이 ‘구산문(九山門)’이 대표적이었다. 구산문으로는 ①홍척국사(洪陟國師)가 남원(南原) 실상사(實相寺)에서 개산(開山)한 실상산문(實相山門), ②도의(道義)국사가 장흥(長興) 보림사(寶林寺)에서 개산한 가지산문(迦智山門), ③범일(梵日)국사가 강릉(江陵) 굴산사(掘山寺)에서 개산한 사굴산문(闍堀山門), ④혜철(惠哲)국사가 곡성(谷城) 태안사(泰安寺)에서 개산한 동리산문(桐裏山門), ⑤무염(無染)국사가 보령(保寧) 성주사(聖住寺)에서 개산한 성주산문(聖住山門), ⑥도윤(道允)국사가 능주(綾州) 쌍봉사(雙峰寺)에서 개산한 사자산문(獅子山門), ⑦도헌(道憲)국사가 문경(聞慶) 봉암사(鳳巖寺)에서 개산한 희양산문(曦陽山門), ⑧현욱(玄昱)국사가 창원(昌原) 봉림사(鳳林寺)에서 개산한 봉림산문(鳳林山門), ⑨932년(고려 태조 15)에 이엄(利嚴)이 해주(海州) 수미산 광조사(廣照寺)에서 개산한 수미산문(須彌山門) 등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