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이집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된다. 이집은 신돈을 비판하였다가 경상도로 귀양갔다. 신돈이 제거된 뒤 서울로 돌아오지만 벼슬에 뜻을 버리고 여주의 천령현으로 이거하여 몸소 농경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그가 여주의 천령현으로 이주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그의 경제적 기반이 되는 소유토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