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신돈이 죽음을 받으매 비로소 돌아와 이름을 고쳐 ‘集’이라 하고 자를 ‘浩然’이라 하고 호를 遁村이라 하였다. 이로부터 출세할 뜻이 없었다. 봉순대부판전교시사가 되었으나 얼마 아니하여 물러가 驪州의 川寧縣에 살며 몸소 밭 갈고 글을 읽었다. 때로는 시편과 새 곡식을 정몽주 등에게 선사하니 몽주가 글을 부쳐 감탄하였다”(『新增東國輿地勝覽』 6, 廣州 辨誤 高麗 李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