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國朝人物考』에 실린 洪進 神道碑銘을 底本으로 하였다. 홍진(1541~1616)의 묘는 대신면 계림리에 있다. 묘역에는 묘표만 세워져 있고 신도비는 없다. 정온(鄭蘊, 1569~1641)에게 신도비명을 받았으나 미처 건립하지 못한 듯하다. 정온은 仁祖代의 문신으로 본관은 草溪, 자는 輝遠, 호는 桐溪 또는 鼓鼓子이다. 학문과 절의가 높았고 관직은 이조참판을 지냈으며 시호는 文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