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昌寧曺氏副題學公派知先錄』에 실린 原本과 國譯本을 底本으로 하였다. 조한영(1608~1670)의 묘는 대신면 장풍리에 있으며 묘역 입구에 신도비가 건립되어 있다. 南九萬(1629~1711)이 지은 비문을 李德成이 쓴후 曺殿周(1640~1696)의 篆書 글씨로 篆額을 集字해서 1697년(숙종 23)에 세운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追記는 손자 曺夏彦이 識하였고, 두 번째 추기는 尹拯이 지었다. 그리고 남구만(1629~1711)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宜寧, 자는 雲路, 호는 藥泉 또는 美齋이다. 관직은 영의정을 지냈고 문장에 뛰어나 墓碑文, 冊文, 頒敎文 등을 많이 지었으며 글씨도 잘 썼다. 시호는 文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