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여주에서는 1862년에 농민항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23년 후인 1885년에 여주는 농민항쟁의 큰 소용돌이가 몰아쳐온다. 항쟁은 결정적인 계기가 있어야 폭발하는 것인데, 뒤에 나오듯이 여주에는 항쟁의 요인이 될 특정한 문제가 생겨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