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日本公使館記錄』 10책, 「강원도 춘천부 폭민 봉기 건」, 231쪽, 1896년 2월 8일. 이런 상태는 4월 말까지 계속되었고, 그 상황은 “鐵嶺 이남 金城까지는 전주의 쓰러진 흔적을 알아볼 수 있을 뿐 한 개의 전주도 없고, (철령 이북) 高山 부근에도 여러 군데 없는 곳이 많으며, 新龍池院 부근에는 3개 정도가 없음. 남산의 남쪽 약 5리쯤 되는 곳에는 7개쯤이 없고, 把撥 근처에도 4개 정도가 없어졌음”이라고 보고되고 있다(『日本公使館記錄』 8책, 「노국인과 일본인에 대한 폭도의 태도」의 별지 3, 269~270쪽, 1896년 4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