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가흥지역에서는 1896년 2월 17일의 충주성 점령 이전부터 전선 절단 활동을 전개하였다. “금일(2월 17일, 필자) 오후 3시 木溪에 갑자기 暴徒 수백 명이 나타났으므로 모든 수단을 다 써서 격퇴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 시각에 이곳 남쪽 전신선이 몇 개 소나 절단되었는지 그 수는 알 수 없다”(『日本公使館記錄』 7책, 「충주 및 여주 부근 폭도에 관한 보고」, 351쪽, 1896년 2월 17일). 전선 파괴 활동은 이후 5월까지도 계속되어 “가흥 북방 20킬로 되는 곳에서 약 10리까지는 모두 절단되고 그로부터 북쪽으로도 무수한 손해가 있었다고 하며, 지난밤 이후 충주 가흥간은 불통”이라고 하거나 “河潭 부근에서 전주 약 20개를 뽑아내고, 전선을 절단”하는 상황이었고 “충주 부근에서는 지금 尙州적들의 출몰이 심상치 않은데, 우리 전신선 같은 것도 수리하면 곧 잇달아 절단하는 형편”이라고 하였다(『日本公使館記錄』 8책, 275, 278~2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