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조선폭도토벌지』, 687쪽 ; 『編冊』8, 損害賠償請願書, 명치 40년 9월 23일, 36쪽. 군대해산을 거부한 원주진위대의 주력은 安倉에 있으면서 평창·강릉·양양 등지로 진출하여 군자금과 의병을 모집하는데, 그 수가 2,000여 명에 달하였다 한다(1907년 8월 15일, 『대한매일신보』 4, 「地方整形」, 33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