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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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여흥(驪興)으로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으로 명성황후가 충주로 피신할 때 호종한 공으로 별천(別薦)되어 남행별군(南行別軍)·선전관·훈련원첨정·철산부사를 거쳐 병조참의·오위장 등을 지냈다. 1889년(고종 26) 9월 여주목사에 부임하였으며 이듬해 3월 체직되어 선천방어사·전라우수사·전라병사·병조참판·형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892년 통제사·영남광무회판(嶺南鑛務會辦)을 지냈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 김홍집내각이 수립되자 척신(戚臣)계열의 거두들과 함께 밀려났으며 통제사 때의 탐학에 의하여 녹도(鹿島)에 유배되었다. 그후 풀려나 1896년 중추원1등의관, 1901년 중추원의관, 1904년 의정부찬정·궁내부특진관에 임명되었으며 서훈2등이 특승(特陞)되었다. 1905년 특명전권공사·중추원찬의를 역임하였으며, 1906년 육군부장, 1907년 참모관을 지냈다. 1910년 국권강탈 이후 일제에 의하여 남작이 되었다.
□ 참고문헌 : 『고종실록』, 『순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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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