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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보(重甫), 호는 소고(嘯皐)이며, 박형(朴珩)의 아들이다.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40년(중종 35) 식년문과에서 병과로 급제, 승문원·예문관·승정원·홍문관 등을 거쳐 정자(正字)로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어 수찬·이조좌랑을 거쳐 정언이 되었다. 소윤(小尹)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자 벼슬을 사직하고 귀향하였다. 1547년(명종 2) 예조정랑에 다시 임명되고 그 이듬해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귀향했으며, 상복(喪服)을 벗은 뒤 현풍현감이 되어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휼하는데 힘썼다. 1557년 직강(直講)을 거쳐 사예(司藝)가 되었으나 윤원형의 세도가 더욱 심하여 벼슬에서 물러나 독서에 힘썼다. 이듬해 풍기군수로 임명되어 치적을 쌓고 얼마 있다가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임명되었고 판교(判校)를 거쳐 병조참의·동부승지 등을 거쳐 진주목사로 나아갔다. 1569년(선조 2) 동지부사로 명(明)에 다녀왔으며 1571년 황해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좌승지에 임명되고 1573년 도승지, 다음해 경주부윤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1576년 다시 도승지에 임명되었고 강화부유수를 거쳐 1579년 여주목사로 재임하였으며, 1581년 춘천부사에 나아갔다가 병으로 사직하고 귀향하였다. 1583년 공조참의를 거쳐 대사간이 되었으나 언사(言事)에 연루, 왕의 뜻에 거슬려 창원부사로 좌천, 얼마 뒤 중앙에 소환되었다가 병사하였다. 스승인 이황에게 실력을 크게 인정받았으며 시문에 능하였고 심학(心學)에 주력하여 실천적 수행에 힘썼다. 저서로는 『성리유선(性理類選)』, 『공문심법유취(孔門心法類聚)』, 『강목심법(綱目心法)』, 『소고문집』 등이 있다.
□ 참고문헌 : 『중종실록』, 『명종실록』, 『선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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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