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오윤해
  • 복사
  • 해당 서브 사이트명 qr코드

    모바일로 QR코드를 스캔하면
    이 페이지로 바로 접속 할 수있습니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화(汝和), 호는 만운(晩雲)이며, 오희문(吳希文)의 아들로 백부인 오희인(吳希仁)에게 입양되었다. 1588년(선조 21)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1610년(광해군 2) 세자익위사부솔(世子翊衛司副率)이 되고 그해 별시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수찬·교리·응교·예조정랑 등을 역임하고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낸 뒤 1612년(광해군 4) 여주목사로 나갔다. 공무 집행에 있어서는 엄격한 규율을 지키고 백성을 사랑하여 흉년에 창고를 열어 기민을 진제(賑濟)하여 많은 치적을 남겼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강화가 성립되자 벼슬을 버리고 산중에 은거하였다.

□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 『인조실록』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

담당자 정보

  • 담당부서 문화예술과
  • 담당자 조원기
  • 연락처 031-887-3582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