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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윤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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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의 문관으로 본관은 단양(丹陽)이며 부사 우신(禹晨)의 아들이다. 광주판관·감찰·돈령부판관·예빈시판관·평시서령을 거쳐 1495년(연산군 1) 정5품 사의가 되었다. 왕후의 족친으로서 1506년(중종 1) 여주목사가 되었는데 연산군이 장단(長湍)의 석벽(石壁)에다 별궁(別宮)을 지을 때 차사원(差使員)이 되어 마음대로 금품을 긁어 들이면서 밤낮으로 공정(工程)을 독촉하여 받아들인 집물(什物)이 산같이 쌓였다. 배로 경강(京江)에 운반하여 팔아서 사리(私利)로 만들었는데 침탈이 그침이 없어 백성이 명령을 감당하지 못하여 파면 당하였다. 그후 내금위장·돈영도정·우림위장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본래 탐혹한 데다가 재간이 있고 남을 잘 섬겼다. 중종반정 후에는 배천(白川)의 수령이 되어 백성을 학대함이 더욱 극심하였다. 혹리(酷吏)를 도태시키라는 명이 있자 우윤공을 으뜸으로 삼았다.

□ 참고문헌 : 『성종실록』, 『연산군일기』, 『중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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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