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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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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전주, 자는 군정(君貞), 호는 졸암(拙庵) 또는 낙빈(洛濱)이다. 임영대군(臨瀛大君)의 후손이며 당은부수(唐恩副守) 이휘(李徽)의 아들이다. 1559년(명종 14)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62년 저작에 재직 중 효행으로 형조좌랑으로 특진되었으며, 사헌부장령 때 보우(普雨)의 죄상을 논핵하였다가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을사사화 때 소윤파인 이기(李芑)·정순붕(鄭順朋)·임백령(林百齡) 등의 보익공신(保翼功臣)을 삭탈하는 전지(傳旨)를 올려 간흉(奸凶)의 죄상을 폭로하기도 하였다. 1576년(선조 9) 여주목사로 재임하면서 무뢰배들을 데리고 멋대로 폐단을 부린다고 사헌부에서 탄핵하여 파직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죽자 3년 동안 죽을 먹으며 피눈물을 흘리다가 마침내 실명하기에 이르렀다. 탈상한 후 승지에 제수되었는데 실명한 자를 왕 가까이 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대하니 명종이 교서를 내려 “사람들은 그의 눈을 미워하지만 나는 그의 눈을 사랑한다”라고 하여 그에 대한 신뢰를 나타내었다.

□ 참고문헌 : 『명종실록』, 『선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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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