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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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우봉, 자는 충백(忠伯)이며, 이식(李埴)에게 입양되었다. 1864년(고종 1) 경과증광별시에서 병과로 급제한 뒤 10월에 수찬이 되었다. 이어 승정원의 동부승지로 특제되었으며 1865년 이조참의에 임명되었다. 1866년(고종 3) 4월 여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아 5월 체직되었다. 이어 홍문관부제학이 되어 여러 차례 소(疏)를 올리며 소임을 다하였다. 1870년에는 전라감사로 나가 외침에 대비한 성(城)의 수보(修補)와 군사훈련에 주력하였다. 1874년 형조판서에 올랐으며, 1883년 병조판서가 되었다. 갑신정변 직전인 1884년 6월에는 동지겸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가 되어 청(淸)에 다녀오기로 되어 있었으나 청(淸)에 다녀와 복명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1885년 5월 예조판서·홍문관제학·예문관제학 등을 거쳐 이듬해 6월에 경상감사로 나아갔다. 1890년에 형조판서, 1893년 판중추부사를 지냈다. 1896년에는 품계가 정1품에 오르고 규장원경(奎章院卿)이 되었으며 칙임관 3등에 올랐다. 이듬해 중추원의장에 칙임관 1등이 되었다. 1898년 궁내부특진관·의정부참정을 지냈으며, 1899년에는 금보전문서(金寶篆文書) 서사관(書寫官)을 지냈다. 1901년 궁내부특진관에 재임하였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 참고문헌 : 『고종실록』, 『일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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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