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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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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출신으로 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되자 조인환(曺仁煥)과 함께 의병을 결성하여 여주·홍천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을사조약 이후 의병운동이 대중성을 띠게 되면서 항일투쟁의 양상도 달라져 납세거부, 도조수납거부, 부호재산약취, 빈민구휼, 악질양반에 대한 응징 등으로 나타났다. 이해 9월 하순에 유각은 각 면(面)·동(洞)에 “전답곡 추수자를 병작반분하여 작인소식(作人所食) 이외에 전주소식(田主所食)은 비록 1입곡(1粒穀)이라도 물계급(勿計給)하고 선박수출을 일병집류(一倂執留)라도 여혹위월(如或違越)이면 해작인(該作人)을 포살(砲殺)하고 해동(該洞)도 충화소탕(衝火掃蕩)케 한다”는 통문을 발하여 군량 확보에 주력하면서 친일관료들을 소탕하고 이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일군이 제13여사단장은 보병52연대의 1중대를 파견하자 조인환·유각의 의병부대는 이들과 치열한 격전을 벌여 일군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다.

□ 참고문헌 : 국가보훈처, 1983, 『독립운동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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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