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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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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의 항일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순팔(舜八), 호는 괘당(卦堂)이고 점동면 사곡리 출신이다. 1894년(고종 3)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음직(蔭職)으로 관직에 진출하여 주사(主事)와 감조관(監造官)을 지냈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이후 벼슬을 단념하고 대장간을 세워 병장기와 화약을 제조하여 군자금과 더불어 각지의 의병들에게 공급하였다. 또한 충주의 의병장 한동직(韓東稷)과 남녀 보부상을 통해 통문(通文)을 돌리는 연락망을 조직하고, 화적(火賊) 두목 홍재일(洪在一)을 포섭하여 100여 명의 화적을 의병부대에 편입시켰다. 그러나 이 같은 행동을 감지한 일본 헌병 20여 명에 의해서 1907년 9월 13일 체포되어 윤성구, 박용손과 함께 총살당했다.

□ 참고문헌 : 「윤원섭 독립유공자 공적 조사서」(2004) ; 「황성신문」(광무 4년 3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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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