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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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龍仁) 출신으로 윤성필(尹性弼)의진에 가담하여 용인·여주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정미7조약(丁未7條約)이 맺어진 직후 1907년 음력 7월 윤성필의진에 투신하여 의병활동을 하였다. 특히 그는 동지들과 더불어 각각 총기로 무장하고 경기도 여주군 일본경찰 분파소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 2명을 사살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1908년 음력 정월 28일 8명의 동지들과 함께 용인군 두미동(斗尾洞)에 들어가 군자금 모집활동을 벌이다 피체되었다. 이때 그는 의병을 일으킨 목적이 “현 정부와 일본인을 일체 토벌하고 국권을 회복하는 것이다”라고 당당히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1908년 3월 28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종신유형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참고문헌 : 국가보훈처, 1996,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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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