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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서로 쓰여진 김병교 묘표
□ 소재지 : 가남읍 금당리
□ 시 대 : 조선
김병교(1801~1876)는 고종대(高宗代)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공기(公器)이며 이조판서를 지낸 김교근(金敎根)의 아들이다. 1851년(철종 2) 진사가 되고 이듬해 현감으로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지평(持平)이 되었다. 1853년(철종 4) 이조참판에 특진되었으며 대사성과 우참찬(右參贊)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한성부판윤이 되었으나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집정으로 사임하였다가, 다시 흥선대원군에 의해서 중용되어 1864년(고종 1) 형조판서를 거쳐 1868년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며 기노사(耆老社)에 들어갔다.
묘는 금당리 소댕이마을 뒤쪽의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18, 폭 92.5, 두께 39.5), 상석(높이 38, 폭 107.5, 두께 75), 향로석(높이 31, 폭 31.5, 두께 22.5), 망주석(높이 189, 폭 40, 두께 40)의 옛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묘역의 좌우에 세운 팔각망주석은 당시의 유행대로 아무런 문양을 장식하지 않았다. 봉분의 우측에는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총 높이 169)가 건립되어 있다. 방부(높이 5, 폭 82, 두께 57)는 거의 매몰되었으며, 개석(높이 47, 폭 90.5, 두께 58.5)엔 팔작지붕을 올렸다. 잡석이 섞인 회색 대리석의 비신(높이 119, 폭 55.5, 두께 25) 앞면에 세줄의 큰 예서(隸書)로 “행(行) 이조판서(吏曹判書) 안동(安東) 김공(金公) 휘병교지묘(諱炳喬之墓) 정경부인(貞敬夫人) 한산이씨(韓山李氏) 부좌(祔左)”라 써서 부부 합장묘임을 알 수 있다. 비신의 뒷면과 좌우면에 불초손(不肖孫) 김학진(金鶴鎭, 1838~?)이 근기(謹記)한 묘표음기를 각자(刻字)했으나 서자(書者)와 표제(表題)는 기록하지 않았다. 건립연대가 누락되었지만, 전후사정으로 보아 1876년(고종 13)경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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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