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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 묘 전경
□ 소재지 : 흥천면 귀백리 백양산
□ 시 대 : 조선
김주(1512~1563)는 명종대(明宗代)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응림(應霖), 호는 우암(寓菴)이다. 승문원판교 김환의 현손이자 안원군 김공량의 아들이다. 1531년(중종 26)에 진사가 되고 1539년(중종 34)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호당에 뽑혔다. 그리고 외직으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관찰사를 지내고 대사헌을 거쳐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1563년(명종 18) 선계변무사(璿系辨誣使)로 명(明)에 가서 사명을 완수하였으나 그곳에서 병들어 객사(客死)하였으며 1590년(선조 23)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이 인정되어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화산군(花山君)으로 추봉되었다. 당대의 명류인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 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 1504~1547) 등과 교유가 깊었다. 문장이 뛰어났고 글씨에도 능해 초서를 잘 썼다. 유고로 『우암유집(寓菴遺集)』이 전하며 시호는 문단(文端)이다.
묘는 귀백리 백양산 절골의 우측 구릉에 남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5, 폭 90, 두께 62), 상석(높이 41, 폭 158, 두께 94), 촉대석(높이 15, 폭 29, 두께 99), 동자석(높이 87, 폭 40, 두께 32), 망주석(높이 170, 폭 37, 두께 37), 문인석(높이 191, 폭 60, 두께 46)의 옛 석물이 설치되어 있다. 옛 장명등은 1981년에 도난당하였으며 새로운 장명등은 1983년에 다시 마련하였다. 문인석은 복두공복을 착용하고 있으며, 상석의 좌우에 있는 동자석은 하단이 많이 매몰된 상태이다. 한편 판종정경부사(判宗正卿府事) 이돈우(李敦宇, 1801~?)가 지은 비문을 12세손인 장성군수(長城郡守) 김연하(金演夏)가 써서 1920년 묘역 아래에 건립하였던 방부개석 양식의 신도비는 2004년에 다시 귀부이수(龜趺螭首) 양식의 신도비를 조성하면서 주변의 땅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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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