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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진원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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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 :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산81-2
□ 시 대 : 조선

민진원(1664~1736)은 영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성유(聖猷), 호는 단암(丹巖)이다.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아들이고 의정부우참찬 민진후의 동생이자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의 오빠이다. 또한 동춘당 송준길의 외손이며 송시열의 문인으로 1691년(숙종 17)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러나 기사환국(己巳換局, 1689) 이후 인현왕후가 유폐(幽閉)되고 노론 일파가 탄압 받자 등용되지 못하다가,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甲戌獄事)로 인현왕후가 복위되어 노론이 다시 집권하자 예문관검열로 기용되었다. 이후 격심한 정쟁 속에서 심하게 정치적 부침을 겪었으나 대사성과 예조판서를 거쳐 좌의정에 올랐다. 1727년(영조 3) 정미환국(丁未換局)이 일어나자 파직되어 순안(順安)에 안치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당쟁을 종식시키려는 영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론과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노론의 선봉장으로 활약하였다. 1730년(영조 6) 기로소에 들고 1733년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문장에 능하고 글씨도 잘 써서 여러 비갈 작품을 남겼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묘는 안금리 쇠푸리마을의 서측 구릉에 자리 잡은 여흥민씨세장지 내에 위치했었다. 원래 광주(廣州) 경안면(慶安面)의 군월산(軍月山)에 있었으나, 1976년경 지금의 자리로 이장하였다. 현재는 다시 이장하여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여흥민씨묘역에 위치하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3, 폭 98, 두께 44), 상석(높이 42, 폭 175, 두께 108), 고석(높이 26, 폭 44, 두께 44), 향로석(높이 44, 폭 37, 두께 33), 망주석(높이 151, 폭 39, 두께 39), 문인석(높이 172, 폭 60, 두께 55)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문인석이 착용한 금관(金冠)과 조복(朝服)의 매듭 끈이 부드럽게 조각되었으며, 얼굴과 손의 표현이 매우 사실적이다. 또한 좌측 팔각 망주석의 주신에 새겨진 다람쥐는 위로 올라가게 하고, 우측은 아래로 내려가게 하는 변화를 주었다. 묘표가 없지만 봉분 앞에 놓인 상석의 앞면에 “단암(丹巖) 민문충공(閔文忠公) 진원지묘(鎭遠之墓) 정경부인(貞敬夫人) 파평윤씨(坡平尹氏) 부(祔)”라는 각자(刻字)가 있어 피장자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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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