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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표 묘 전경, 뒤는 원호 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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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표 신도비
□ 소재지 : 북내면 장암리 산 1-1
□ 시 대 : 조선
□ 지정사항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8호
원두표(1593~1664)는 현종대(顯宗代)의 문신으로 본관은 원주, 자는 자건(子建), 호는 탄수(灘叟)이며 충장공(忠壯公) 원호(元豪, 1533~1592)의 손자이자 원계군(原溪君) 원유남(元裕男, 1561~1631)의 아들이다. 대학자 잠야(潛冶) 박지계(朴知誡, 1573~1635)의 문인(門人)으로 광해군이 난정(亂政)을 펼치자 인조반정(仁祖反正)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책록되고 원평부원군(原平府院君)에 봉해졌다. 1624년(인조 2)에 일어난 이괄(李适)의 난(亂)을 진압하는 데에도 공을 세웠으며 이후 전라도관찰사와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당시 정계의 핵심 인물로 서인(西人) 가운데에서도 원당(原黨)의 영수가 되어 많은 활약을 하였다. 1656년(효종 7) 우의정에 오르고 이어서 1662년(현종 3) 좌의정에 이르렀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묘는 장암리 아랫말에 위치한 원주원씨세장지 내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은 원형대로 잘 보전되어 있으며 혼유석(높이 10, 폭 94, 두께 37), 상석(높이 34, 폭 163, 두께 99), 향로석(높이 36, 폭 36, 두께 31), 망주석(높이 187, 폭 39, 두께 39), 문인석(높이 187, 폭 64, 두께 58)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문인석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고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착용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다. 망주석에는 운문(雲紋)과 연주(連珠)를 조각하였으며 상석의 앞면에는 피장자의 신원을 각자해 놓았다. 봉분 앞에 세워진 묘표(총 높이 191)는 백대리석의 비신(높이 131, 폭 63.5, 두께 29) 앞면에 단정한 대자(大字)로 원두표의 관직과 부인의 성씨를 써 놓아 합장임을 밝히고 있다. 나머지 비신의 삼면에 묘표음기를 새겨 놓았으나 표제와 찬서자는 기록하지 않았다. 묘역 아래에 당당하게 세워진 방부개석 양식의 신도비(총 높이 약 355)는 대학자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 1702~1772)이 찬(撰)하고 외예손(外裔孫)인 예조참판(禮曹參判) 이최중(李最中, 1715~1784)이 서(書)하였으며 판중추부사 민진원이 전액을 올렸다. 비신(높이 191.5, 폭 91, 두께 53)은 오석(烏石)을 사용하였으며 상태는 완벽하다. 건립연대는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삼을유(三乙酉, 1765, 영조 41) 십일월(十一月) 일립(日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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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