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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신의 마모가 심한 조석주 묘표
□ 소재지 : 대신면 천서리
□ 시 대 : 조선
조석주(1641~1716)는 숙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배천, 자는 유신(維新), 호는 백야(白野)이다. 강소공 조림의 후손이자 장사랑 조연손의 6세손이고 통덕랑 조경의 손자이며 통사랑 조겸행의 아들이다. 현종대 생원시에 합격하고, 1680년(숙종 6)에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 여러 벼슬을 거쳐 사헌부장령에 이르렀다. 만년에는 고향에 돌아가 바둑과 술을 즐기면서 유유자적하였다. 사람됨이 단정하고 겸손하였으며 파당(派黨)을 미워하고 청렴결백하였다. 저서로 『백야기문(白野記聞)』, 『백야집(白野集)』이 있으며, 사후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묘는 천서리 멧말의 북쪽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 상석, 향로석, 망주석의 옛 석물이 설치되어 있으나 문인석은 전하지 않는다. 봉분의 좌측에 1735년(영조 11)에 세운 방부원수 양식의 묘표(총 높이 179)가 서 있지만 음기는 기록하지 않았다. 묘역의 아래에 방부개석 양식의 묘갈(총 높이 약 241)이 건립되어 있다. 좌의정 조태억(趙泰億, 1675~1728)이 지은 묘갈문을 대사간(大司諫) 조명교(曹命敎, 1687~1753)가 서병전(書幷篆)하여 비신(높이 142, 폭 64, 두께 31)의 앞뒤와 좌측면에 각자하였으나 박락이 심하여 판독이 어려운 실정이다. 갈제(碣題)는 “유명조선(有明朝鮮) 통훈대부(通訓大夫)…장령(掌令) 증통정대부(贈通政大夫) 승정원도승지(承政院都承旨) 겸경연참찬관(兼經筵參贊官)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 예문관직제(藝文館直提)…원정(院正) 조공(趙公) 묘갈명병서(墓碣銘幷序)”라 하고 전액을 “행장령(行掌令) 증도승지(贈都承旨) 백야(白野) 조공(趙公) 묘갈명(墓碣銘)”이라 하여 비석의 종류가 묘갈임을 밝히고 있다. 묘갈문의 말미에 건립연대를 새겨 놓은 듯하나 마멸이 심하여 파악이 불가능하다.
조석주 묘의 좌측 구릉에는 6대조 장사랑 조연손의 묘가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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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