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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대 묘 전경
□ 소재지 : 대신면 보통리
□ 시 대 : 조선
조윤대(1748~1813)는 순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녕, 자는 사원(士元), 호는 동포(東浦)이다. 대사간을 지낸 조하망의 손자이며 광흥창수 조명준의 아들이다. 1779년(정조 3) 정시문과에 급제, 예문관검열을 지낸 후 초계문신(抄啓文臣)에 선발되었다. 1784년 이조전랑에 있을 때 이조판서 이명식(李命植)이 송시열(宋時烈)의 후손을 능관(陵官)으로 추천하자, 역적 송덕상(宋德相, ?~1783)의 친척이라는 점을 지적하여 마침내 취소시켰고, 그후 소론의 맹장으로 활약하였다. 1786년 홍국영(洪國榮, 1748~1781)과 관련된 인물의 처벌 문제를 놓고 삼사복합상소(三司伏閤上疏)를 지어 일대 옥사를 일으켰으며, 대사간과 이조참판을 거쳐 1801년(순조 1) 형조판서가 되었다. 또 『정조실록(正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하고 동지겸진주사(冬至兼陳奏使)의 정사(正使)로 청(淸)에 들어가 신유박해(辛酉迫害)때 청의 신부 주문모(周文謨)를 처형한 문제에 대해서 잘 해명하고 돌아왔다. 1811년(순조 11) 이조판서 재직 중 다시 동지사(冬至使)의 임무를 띠고 청에 다녀온 다음 한성판윤을 거쳐 1813년 판돈녕부사가 되었다. 글씨에도 능하여 강릉(江陵)의 오봉서원경적비(五峰書院經蹟碑)를 썼다.
묘는 보통리 보통마을의 뒤쪽 구릉에 세워진 모충사(慕忠祠)의 좌측에 조성되어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11, 폭 84, 두께 36), 상석(높이 41, 폭 128.5, 두께 81.5), 고석(높이 29.5, 폭 36.5, 두께 36.5), 향로석(높이 46, 폭 37.5, 두께 24), 망주석의 옛 석물이 간소하게 설치되어 있다. 순조대의 유행대로 석물의 기능성만 강조하고, 문양을 거의 장식하지 않은 점이 양식상의 특징이다. 또한 향로석의 뒷면을 돌출시켜 상석을 받친 것이 주목된다. 그리고 묘표를 세우지 않았으나, 족보와 후손의 증언을 통해서 조윤대 묘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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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