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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언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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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 : 대신면 장풍리
□ 시 대 : 조선

조하언(1657~1699)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녕, 자는 미백(美伯), 호는 우의당(愚意堂)이다. 담양부사(潭陽府使) 조전주(曹殿周, 1640~1696)의 아들이자 영안위(永安尉) 홍주원(洪柱元, 1606~1672)의 외손(外孫)이며 효간공(孝簡公) 이정영(李正英, 1616~1686)의 사위이다. 1622년(광해군 14) 진사(進士)가 되었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으며 사림(士林)의 종장(宗長)이 되어서는 대명의리(大明義理)를 지킬 것을 누차 왕에게 상소하였다. 1695년(숙종 21) 경릉참봉(敬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묘는 장풍리 오룡골마을의 남쪽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 상석, 향로석, 망주석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으며 봉분의 우측에 방부개석 양식의 묘갈(총 높이 약 235)이 건립되어 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개석(높이 33, 폭 98, 두께 66)의 좌측이 파손되었으며, 백대리석의 비신(높이 153, 폭 63, 두께 19)에도 탄흔이 남아 있다. 영의정 최규서(崔奎瑞, 1650~1735)가 지은 묘갈문을 종자(從子) 이조참판 조명교가 비신의 앞뒤에 쓰고 아울러 “경릉참봉(敬陵參奉)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 조공(曺公) 묘갈명(墓碣銘)”이라고 전액도 올렸다. 갈제(碣題)는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조봉대부(朝奉大夫) 행경릉참봉(行敬陵參奉) 증가선대부(贈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겸동지의금부사(兼同知義禁府事)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 조공(曺公) 묘갈명병서(墓碣銘幷序)”이다. 또한 비신의 우측에 새겨진 추기(追記)는 손남(孫男) 조윤적(曺允迪, 1707~1743)이 기록하고 정조대의 명필인 종손(從孫) 조윤형(曹允亨, 1725~1799)이 서(書)하였다. 건립연대는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삼계유(三癸酉, 1753, 영조 29) 월(月) 일립(日立)”이다. 한편 조하언 묘의 우측 구릉에는 손자 조윤적, 증손 조우진(曺羽振), 5세손 조학승(曺學承)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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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