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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지역은 1960년대 후반까지는 비록 그 숫자가 적어 활발하였다고 볼 수 없지만 일정한 지역을 관할하던 세습무와 강신무, 소경법사, 선무당이 혼합되어 존재하였다. 이 가운데 세습무들은 비록 천한 신분으로 하대를 받긴 하였으나, 일정한 지역기반을 전제로 활동하였으므로 자신의 관할지역에서만큼은 가장 우위의 종교적 지위를 누렸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주지역에서 1970년대 이후 세습무는 거의 전승되지 않은 형편이며, 세습무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강신무적 특징이 더 두드러진 임춘수의 사례가 거의 유일하다 할 수 있다.
경문을 학습하여 앉은거리와 점을 치는 것으로 생계를 삼았던 소경법사들은 현재는 강신체험 후 무당이 된 남자무당들로 대체되었다. 강신체험 후 무당이 된 여자무당들의 숫자에 비하면 약 20% 남짓한 적은 비율로, 예전의 법사들에 비하면 종교전문가로서의 능력은 훨씬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점차 수가 줄어들어 법사의 앉은거리와 강신무의 선굿이 합쳐져서 굿을 하는 양상이 일반화되고 있는 요즘 상황에서 법사는 점차 희소성을 띄어가고 있다.
강신무인 보살들은 여주지역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부류이며, 학습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열에 일곱 여덟은 선무당일 것이라는 짐작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선무당의 가장 적절한 사례는 훗고개할머니와 같이 간단한 비손이나 산파역할을 해오던 부류의 무당이다. 강신무인 보살들이 숫자적으로 우위를 차지하는 가운데 현재는 훗고개할머니와 같은 부류의 선무당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형편이다.
여주지역의 대표적인 굿은 고창굿으로 불리는 이포의 삼신당굿이다. 마을을 세운 천령 최씨 집안과 양주 화암사와 관련된 나옹과 무학대사를 주요 등장인물로 하는 삼신당굿의 설화는 삼신당굿의 기원을 꽤나 오래 전으로 올라가게 한다. 그러나 놀이패를 불러 크게 굿을 했던 이포의 삼신당굿은 이포나루의 지정학적 위치와 경제적 활동상과 관련된 별신굿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전과 같이 크게 굿을 여는 일은 한창 봄농사로 바쁜 이포의 마을사람들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금사면의 특용작물인 참외재배로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예전 그대로 고창굿을 재현하여 전승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굿의 정신에 어울리지 않는다. 여주의 삼신당굿 굿거리가 본질적으로 일종의 정형성을 띠기보다는 서울굿의 굿거리를 수용하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큰 융통성을 보여 다양한 참여유도와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는 마을굿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무가와 관련한 자료는 소경법사였던 라용삼의 무경을 소개하였다. 그런데 이 무경에서는 일반적으로 무당들이 중요시하는 옥추경류의 경문 대신 선무당들의 무가와 불경 등이 혼합된 양상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이 무경 주인공의 학습과정이 나타나야만 확인될 수 있으나, 다른 곳으로 이주한 상태이다.
여주지역의 기도터로는 남한강변과 북성산의 기도터와 굿당이 대표적이다. 예전에는 주로 집에서 굿을 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져서 외지의 굿당을 찾거나 북성산, 남한강변 등의 장소를 찾는다. 그러나 출입하는 일부 무당들에 의한 주변환경 오염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일이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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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