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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부리 얼답교놀이
답교놀이란 다리밟기를 말한다. 다리밟기를 함으로써 한 해의 액을 방지할 수 있다는 무속적 사고에서 발생한 민속놀이이다. 그리고 답교놀이는 다리를 밟는다는 뜻으로 풀이할 때 다리(橋)와 다리(脚)와는 동음으로 나타난다. 다리를 밟음으로써 인체의 제일 중요한 부분의 하나인 다리의 건강을 추구한다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답교놀이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고려시대부터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답교놀이는 그냥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놀고 술 마시며 춤추고 시를 읊는 등 무속성과 오락성이 복합된 민속놀이라 할 수 있다.
점동면 원부리는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오갑산 밑에 있다. 원부리는 원래 충청북도 음성군 거곡면에 예속되었던 지역인데, 근처에 원향사(元享寺)라는 절이 있어 원리(元里)라 불렸다. 그러다가 경기도로 편입되면서 점동면 분사곡(分士谷) 마을의 분(分)자를 부(富)자로 고쳐 원부리(元富里)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청미천(淸渼川)을 가로지른 목조다리가 있어 답교놀이가 성행했다는 것이 1983년 민속학자인 임동권의 조사에 의해 밝혀졌다고 한다. 이로 인해 답교놀이를 재연했는데 인원편성을 보면 많은 문제를 지닌 것 같다. 그것은 재연된 답교놀이의 인원편성이 단순히 시각적인 형태만을 중시해 왕·정승·궁녀 등 아무 관계가 없는 인물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답교놀이가 원부리에서 창출되었는데 전형적인 촌락에 왕이나 정승 등은 걸맞지 않는 편성이다. 원부리얼 답교놀이를 ‘얼답교놀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그러나 답교놀이가 원부리에서 창출되었고, 또 그 지역적 특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바, 원부리얼 답교놀이로 부르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한편 원부리 사람들 가운데에는 안금식 전 문화원장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것을 학계 전문가들의 고증을 받아 시연한 것이라 증언하는 사람들도 있다.1) 지금은 인원동원이 어렵고 비용도 들어 잘 안 한다고 하며, 옛날식대로 못하고 있다고 한다.2)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답교놀이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 저녁에 행하였다. 이 놀이는 엄밀하게 말하면 달맞이·달집태우기·횃불놀이와 구분되는 것이긴 하지만, 진행과정상 달맞이·달집태우기·횃불놀이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답교놀이는 마을사람들 모두가 참여를 하지만, 원래 단체놀이라기보다는 각 개인이나 여러 명의 또래들이 중심이 되어 놀았다. 이것이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참여하게 되면서 대동놀이가 된 것이다. 농악대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정월 보름 저녁이 되면 보름달이 뜨기를 기다린다. 보름달이 막 솟아오르기 시작하면 모두 달을 쳐다보면서 “만월이요 만월이요”하고 크게 외치면서 횃불을 흔들어 환호하고 큰절을 하면서 그 해의 소원성취를 빌었다.
달맞이·달집태우기·횃불놀이가 끝나면 농악대와 마을사람들은 마을 근처에 있는 다리로 가서 다리를 발로 밟고 지나다니면서 놀이를 한다. 길군악의 가락에 맞추어 답교놀이를 할 때 풍물잽이들을 앞세우고 다리를 밟는 도중 원무(圓舞)·열무(列舞)·개인무(個人舞)·행진 등의 형태로 다리밟기를 행하였다.
답교놀이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앞산타령·뒷산타령·잦은방아 타령에 맞춰 흥을 돋우고 무동(舞童)춤 왜장녀의 쾌락적인 춤 등을 추며 다리를 왕복하면서 즐긴다.
답교놀이를 마친 후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에서 뒷풀이를 한다. 이 뒷풀이는 답교놀이를 끝낸 후 액이 소멸되었다는 안도감으로 흥이 절정에 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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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