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선돌
  • 복사
  • 해당 서브 사이트명 qr코드

    모바일로 QR코드를 스캔하면
    이 페이지로 바로 접속 할 수있습니다.

조선 초 이성계의 사위가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오게 되었을 때 점동면 덕평리에 거주를 정했다. 덕평리에서 사방 10리를 부마의 영역으로 하기 위해 그 영역을 표시하는 뜻으로 세워둔 돌을 선돌(立石)이라 한다.

일설에 의하면 옛날에 어떤 임금이 사위(덕실 권씨)에게 땅을 주기 위해 강금산(剛金山)에 올라가 그곳에서 눈에 보이는 곳을 모두 부마의 땅으로 주겠다고 말하고 어디까지 보이냐고 물었더니 부마가 말하기를 남대문 문턱이 보일 듯 말 듯하다고 했다. 임금은 화가 났으나 사위를 벌할 수 없어 그곳 강금산(剛金山)으로부터 사방 십리까지를 부마의 땅으로 주었는데 그곳을 경계표시하기 위해 세워둔 돌이 선돌이라는 설이 있다.

이 선돌은 점동면 처리, 당진리(완쟁이), 덕평리(덕실), 가남읍 금당리 등 4곳에 같은 시기에 세워졌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

담당자 정보

  • 담당부서 문화예술과
  • 담당자 조원기
  • 연락처 031-887-3582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