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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치 있는 산천 즐펀한 들녘! 아직도 따갑게 쬐는 가을 볕 아래 산들바람을 타고 황금물결 일렁대는 풍요가 무르익는 부자터가 은골(隱-)이다.
바로 이곳은 설성산(雪城山)에서 물 근원한 양화천(揚花川)이 새터, 이댕이, 일신, 솥단이, 매화지(梅花地), 용거동(龍居洞), 행자촌, 탑삼지, 거막지, 율극리를 거쳐 귀백리 건너 낸들 양화 옛나루로 흘러드는 변방에 있다.
옛 지명 흥곡면과 길천면이 합명된 흥천면(興川面) 백리천(百里川) 연변 큰 은골 아래 탑삼지 산모퉁을 한 굽이 돌아들면 매화천(梅花川) 변에 은골이라 불리던 몇 채 안되는 집이 동리를 이루고 있던 곳이 작은 은골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동리가 없어지고 작은 은골 옛 터전에는 깨진 기와쪽만이 스산하게 나뒹굴 뿐이고, 다만 예나 다름 없는 설봉산과 원적산이 드높고, 또한 앵자봉과 양자산의 첩첩한 영마루 너머 아득히 울퉁불퉁 협곡진 산봉이 위용을 자랑하는 을씨년스런 용문산과 멋진 조형을 이룬 채 마치 품에 감싸인 듯한 요염한 여인의 자태인 양 추읍산이 빼어나 보이는 동으로 우두산, 마감산, 보금산이 병풍을 드리운 듯 즐비한 고산(高山)이 좌정했다.
고려의 대문호 백운거사 이규보 선생은 이러한 사면의 수려한 산하를 한눈에 굽어보며 양화천이 여강으로 흘러드는 나루터로 조각배에 몸을 싣고 그리운 고향을 찾아들면서 정감어린 여주의 산천을 시로 읊조리길, “강이 머니 하늘이 낮게 붙은 듯, 배가 가니 언덕이 따라 옮기듯(江遠天低 丹行岸越移), 엷은 구름은 흰 비단처럼 비꼈는데 성긴 비는 실처럼 뿌린다오(簿雲橫似素 疎雨散如絲). 여울이 험하니 물 흐름이 빠르기도 봉우리 많으니 산이 오래도록 보이누나(灘險水流洷蜂多山盡遲). 흥얼거리며 자주 고개 드니 바로 고향을 바라보는 때문이라오(沈吟費 首正是望嚮時).”라고 하였다.
두무재로부터 신근리(莘根里)까지의 지세가 지네처럼 생겨 오공동(蜈蚣洞)이었던 동명이 오근동(悟根洞)으로 바뀐 옆 은골 멀리 원적산의 정기를 타고 산세가 용세(龍勢)로, 마치 살아 있는 용이 용트림하는 형세로 뻗어내려 양화천에 다다랐는데, 그곳에 커다란 용늪이 있었고 용늪 바로 옆이 양화천인데 용두가 양화천을 가로질러 북성산 낙맥 칭성산(稱城山)에 자리한 영릉(英陵)을 향하고 있다.
오랜 옛날에 바로 이 은골에는 대가가 있어 길손이 끊임없이 찾아드는가 하면 하루에도 서너 번씩 거지가 구걸하러 문전을 찾아들곤 하니 대가의 마나님이 귀찮기가 이를 데 없었다.
어느 날 하루는 도사가 우연히 이 동리 앞을 지나다가 바로 대가에서 잠깐 쉬었다 간 후, 그 집 마나님이 속으로 생각하기를, 길손과 구걸하러 오는 사람들이 매일 오는 것이 귀찮고 또한 동냥주는 것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 우리 집에 오지 못하게 하는 방도가 없을까 하고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무엇이 생각났는지 부리나케 도사가 넘어간 언덕길로 도사를 찾아 마나님이 황급히 나섰다.
숨을 몰아쉬며 언덕길을 막 오르니 저만치 도사가 깊은 상념에 잠겨 천천히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급히 앞으로 나서면서 도사에게 예를 올리고는 매일 문전을 찾아드는 사람들이 오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도를 일러달라고 간청을 한다.
도사는 지긋이 눈을 감더니 천천히 입을 열어, 방도가 있기는 하지마는 후회를 할 것이라며 발길을 옮겨 돌아서는데 마나님이 얼핏 도사의 앞을 가로막으며 후회를 안할 것인즉 제발 사람들이 문전을 찾아들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도만을 가르쳐 달라고 애걸을 하는 것이다.
한참을 도사가 망설이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용늪이 있는 용머리를 가리키며 저 용의 머리 목 부분에 해당되는 곳을 어른 가래(6명이 하는 가래)로 혈을 끊으면 사람이 찾아들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는 어디론지 총총히 사라졌다.
며칠 후 동리 사람들을 풀어 용의 목부분의 혈을 잘록하게 끊었다.
그칠 사이 없이 사람들이 찾아들던 작은 은골에 용의 혈을 끊은 후 사람의 발길이 뚝 그치었으니 동리가 한낮이라도 으스스하고 쓸쓸한 터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 궂은 비 내리는 한밤중에 디딜 방앗간에 사람이 있을 리가 만무한데 떡방아 찧는 소리가 나는가 하면 여인의 자지러지는 비명소리 같기도 한 요사스런 웃음이 간간히 들려 오기도 하니 이런 소문이 동리에 삽시간에 퍼져 해만 지면 동리 사람들은 꼼짝 못하고 집 밖에 얼씬을 못하게 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벼락에 동리 복판에 있던 느티나무 고목이 쓰러지고 툭 하면 장마에 둑이 터져 다된 농사를 망치기 일쑤이고 하니, 용혈을 끊어 작은 은골은 망했다고 소문이 자자하게 퍼져나갔다.
동리 사람들이 실의에 빠져 있던 어느 날 고승 한 분이 이 동리에 찾아드니 동리 사람들이 모두 반가와 어찌할 줄 모른다. 촌로 한 분이 고승을 정중히 맞이하며 자기집 사랑채로 모시고는 이제까지 지나온 사연을 모두 상세하게 이야기를 한 후 동리의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묘책을 일러 달라고 하니 고승이 딴 곳으로 옮기고 탑(搭)을 쌓아 정성을 드리라는 것이다.
옆동리로 가 탑을 쌓고 정성을 드리니 비록 은골은 폐허가 되었지만 재앙이 멈추고 농사일이 잘되었다고 하며 오공동(蜈蚣洞)에 탑을 쌓으니 그 동명이 탑삼지가 되어 전해내려오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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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