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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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
2013년 9월 23일 여주군이 시(市)로 승격하면서 창리에서 창동으로 개칭되었다.
주내면(여주읍) 지역으로 사창이 있어서 창말, 또는 창동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구장터, 비각거리, 사직당을 병합하여 창리라 하고 현재는 창1, 2리로 분동되어 있다.
- 구장터(舊場) : 지금의 하리 상설시장이 형성되기 전 1960년대 여주의 옛시장이 비각거리 남쪽에 있었고 그래서 이 마을을 구장터라 부른다.
- 비각거리(碑閣) : 자안당 앞에 철종 때 세도재상 김병기의 송덕비가 있던 마을이다. 중앙통의 혼잡을 다소나마 덜어주기 위해 군에서 이 지역에 여흥초등학교로부터 2차선 도로를 만들어 그 비각거리의 옛 모습이 없어졌다.
- 옥거리(獄) : 창리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 조선시대 죄수들을 가둬 두던 여주 감옥이 있었다고 한다.
- 자안당(自安堂)터, 우안당(又安堂)터 : 창리 83번지에 있는 터이다. 철종 때 세도재상 김병기(金炳冀)가 이곳에 살면서 자안당이라 하였는데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면서 이 집을 빼앗아 여주군청을 삼았다. 이에 김병기가 바로 옆에 똑같은 집을 짓고 우안당(又安堂)이라 하니, 대원군이 “자식을 낳거든 김병기 같은 놈을 낳아야한다”고 탄식했다고 한다. 현재의 여주 교육청 자리이다.
- 중앙통(中央通) : 창리 중앙에 있는 마을이다. 여주군 농협 뒤편으로부터 하리시장까지 난 여주의 가장 번화한 상가지대이다. 중앙통 입구에는 구 터미널이 위치하고 중앙통을 따라 주변에 많은 상점과 인가들이 들어서 있는 곳으로 2003년 문화의거리가 조성되었다.
- 학교거리 : 창리에 있는 마을이다. 여주초등학교 앞으로 난 거리 주변에 많은 인가들이 모여 있어 이곳을 학교거리라 부르게 되었다.
- 해방촌(解放村) : 창리에 새로 형성된 마을이다. 6·25 때 북쪽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해방촌이라 부르게 되었으나 198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실시하여 옛 자취가 사라졌다.
- 사직단(社稷壇) : 창리에 있는 여주군 사직단의 터다. 가뭄이 심할 때 여주목사가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사직당(社稷堂)은 사직단 밑에 있는 마을이다.
- 김병기 송덕비(金炳冀 頌德碑) : 김병기의 송덕비다. 1860년 경 여주읍에 큰불이 일어나 수백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당시 판돈녕으로 있던 김병기가 자신의 사재를 털어 이재민을 구휼했기에 마을 주민들이 그 은공을 잊지 못해 자안당 앞에 송덕비를 세웠다. 지금은 이 비석이 영월루 아래편으로 옮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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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