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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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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여주군 소개곡면의 지역인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때 본동, 두리봉리와 근남면의 동막리, 귀일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본동과 두리봉의 이름을 따서 본두리(本斗里)라 하였다. 조선 말엽에 서계면에 예속 ‘조구동’이라 불리다가 서재면과 남면이 합치자 본동으로 개칭되었고 광복 이후 두리봉과 합쳐 본두리로 불리고 있다.

  • 두리봉(斗里峯) : 이 마을에는 말의 형상과 비슷한 봉우리가 있는데 그 봉우리가 논에서 곡식을 싣고 곡식창고로 가는 말의 모양과 비슷하다는 유래에서 마을 이름을 두리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동막(東幕) : 본두리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자연마을로 옛날 안성과 장호원에서 곡식이나 각종 물건을 가지고 여주로 가는 길목에 4개의 주막이 있었는데 상인들이 이곳에서 술과 음식을 사먹고 쉬었다가는 곳이라 하여 본두리의 동쪽의 ‘동’자와 주막의 ‘막’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라 한다. 지금은 금강 골프장이 생겨서 해촌(본두2리)으로 옮겨와 살고 있어 동막이란 마을은 없어졌다.
  • 조기울 : 본두리에서 가장 으뜸 되는 마을로 조선시대 조개울면 또는 소개곡면이 되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가남면에 편입되었으며 현재는 해촌조기울, 묘촌조기울로 나뉘어져 행정상 묘촌조기울을 본두1리로 해촌조기울을 본두2리로 부르고 있다. 이 마을에는 불떨이, 또는 낙화놀이라는 동제의식이 있는데 해마다 음력 정월 16일 밤이면 각 집마다 소나무 껍질과 숯을 섞어 빤 가루를 메밀짚 잿물을 들인 창호지로 싸 말아서 지름 8cm, 길이 50cm쯤 되게 만들어서 마을 한가운데 있는 향나무와 미루나무 사이에 걸쳐 맨 철사 줄에 매어 달고 불을 붙여 불똥이 떨어지는 밑에 제물을 차려놓고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현관이 되어 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평안과 만복을 비는데 해촌과 묘촌이 해마다 번갈아 가면서 지낸다.
  • 묘촌조기울 : 현 본두1리를 묘촌(墓村)이라 한다. 원래 본두1, 2리를 조기울이라 칭하여 오던 중 1700년대에 좌의정 김이소(金履蕭)의 묘를 이곳 마을 중심에 이장한 후 묘촌(墓村)조기울로 불리고 있다.
  • 해촌조기울 : 일제시대 농촌 식량증산을 위하여 부락마다 농촌진흥회를 조직하였는데 이 마을 진흥회 명칭은 부락 중앙에 괴목인 해나무가 있어 해촌진흥회라 하였으며 광복이후 해촌조기울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한다.
  • 해골(홰골) : 마을 한가운데 해(홰)나무가 있어 마을 명칭이 일명 해나무골, 횃골, 해촌, 해촌조기울로 불리어 온다. 옛날 어떤 도승이 심었다 한다.
  • 주막거리 : 옛날 마을 입구에 주막이 있었다 하여 주막거리라 한다. 지금은 밭이 되어 있다.
  • 곧은두렁이 :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경에 서씨라는 일가족이 살고 있던 곳으로 집 앞에 길고 곧은 논두렁이 집 앞을 가로질러 있어 곧은두렁이라 부르게 되었다한다. 현재는 인가가 없다.
  • 당골 : 옛날 당집, 또는 절이 있었다 하여 당골이라 하며 지금은 없어졌다.
  • 박작들 : 본두2리 회관터를 박작들이라 하였다 한다.
  • 방죽굴 : 옛날 방죽이 있어 방죽굴이라 하였으나 현재는 금강 골프장에 매립되었다.
  • 중방죽골 : 큰 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방죽이 있었으나 지금은 금강 골프장에 매립되었다.
  • 찬샘골 : 긴등 밑에 있는 골짜기로 농사에 이용할 정도로 샘이 잘나서 찬샘골 또는 참샘배기라 하였다 한다. 그러나 현재는 금강 유리공장터로 매립되었다.
  • 한터 : 옛날 이곳에 한 집이 살았다 해서 한집터 또는 한터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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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문화예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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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