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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민주항쟁을 촉발시킨 고 이한열 열사의 영결식 모습
이러한 정당의 기능을 가진 한국정당들의 발전과정을 보면 한국 정치과정만큼이나 다양하게 변화하였다.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형성단계부터 특이한 과정을 밟았다. 제1공화국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극히 일부 정당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정당들은 자생적으로 정치적 경쟁을 통하여 형성되기보다는 이미 조직화된 정권에 의하여 하향적으로 여당이 피조되고, 여기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참여를 거부한 나머지 정치세력이 야당을 결성해온 사례가 많았다.
심지어 제5공화국의 경우, 신군부인 정권주도세력이 다당체제를 미리 기획하고 그 청사진에 따라 정치판도를 강압적으로 개편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해방 이후 한국정치사에서 명멸한 많은 정당들, 특히 여당들은 그 대부분이 자생적 정당이 아니라 외생적 정당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한국정치사에서 정당은 정치적 정통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적 존재일 뿐 정치권력 자체의 창출자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치과정에서 정당의 역할은 상당히 제한되었다.
이와 같이 정당이 정치의 주도세력보다는 들러리로 있게 된 주요한 이유는 한국정당과 정당체제의 정치적 맥락을 형성해 주는 우리나라 정치체제의 기본적 속성과 깊이 연관되었다. 즉 1987년 민주항쟁 이후 민주화의 여명이 비추기 시작하기까지 우리나라의 역대정권은 고도로 집권화된 권위주의 체제였고, 그 때문에 여당은 항상 정치적 정통성의 결여에 시달려야 했으며, 반면 야당은 집권가능성은 거의 없이, 숙명적으로 이른바 반대만을 위한 영원한 야당의 운명을 감수해야 했다. 또한 한국의 안보상황이 정치체제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이념적 대립과 외세에 의한 남·북한의 분단과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은 이 땅에 만성적 분단위기를 가져왔고, 그 결과 냉전적인 반공이데올로기가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 따라서 한국의 정당정치는 대체로 보수세력 간의 투쟁으로 그 정치마당이 크게 축소되었고, 진보정당 내지 혁신정당의 출현은 구조적으로 제약받았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산업화와 경제성장으로 인한 새로운 사회변화로 정당체제의 변화를 야기했다. 특히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한국정치의 민주화 이행과정에서 주요한 분수령이 되었으며, 시민사회의 발달로 정치적 자유화와 다원화는 크게 촉진되었다. 즉 6월 민주항쟁 이후 지금까지 공동전선을 구축하여왔던 민주세력 간의 계급적·이념적 차이가 표면화되기 시작했고, 시민사회는 민중부문에 기반을 둔 사회변혁운동과 중산층을 기반으로 한 시민운동 간의 분절화·양극화 양상을 보였다. 특히 1991년 1월의 3당 통합으로 거대여당 민주자유당이 출범하면서, 전통적인 민주-반민주 구도는 완전히 붕괴했다. 이후 민주화를 준거로 한 정치적 구분이 애매해지고, 계급적·이념적 요인도 퇴조하였다. 그러나 정당은 인물 및 지역주의라는 전근대적 요인이 등장함으로써 정당간의 정책의 중복 및 수렴현상이 두드러지고, 한국 정당정치는 새로운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물론 김영삼 정부는 최초의 문민정부라는 면에서, 김대중 정부는 평화적 정권교체를 성사했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부는 인터넷 세대에 의한 정치참여를 유도하였다는 점에서 정치적 민주화에 기여했으나, 아직도 한국 정당정치의 앞길은 제도화의 낮은 수준에서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즉 헌팅턴(S. P. Huntington)은 정치발전을 정치제도화(political institutionalization)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이를 조직과 절차가 안정을 획득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이의 정치적 제도화의 척도로서 적응성(adaptability), 복합성(complexity), 자율성(autonomy) 및 응집성(coherence)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정당이 외적 변화에 대하여 적응력이 강하며, 내적 구조나 기능이 고도로 분화되고 복합성을 띠며, 조직 내의 응집력이 강할 뿐 아니라, 다른 조직이나 사회세력에 종속되지 않을 정도의 자율성을 갖출 때, 정당의 제도화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당들은 대체로 정치제도화의 수준 내지 정치발전의 수준이 매우 뒤져 있다. 우선 한국 정당들은 환경도전에 대한 적응력이 매우 약하여 명멸과 부침이 심하며, 또한 정당의 연륜이 대체로 짧다. 해방 이후 수많은 정당이 명멸하였으며, 정당의 수명이 정권이나 정치지도자의 수명에 의존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고도의 억압적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정당의 자율성은 크게 훼손되었다. 또한 당원들은 당보다 특정 지도자나 파벌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였으며, 고질적인 파벌정치가 만연되어 당의 응집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런 한국 정당정치의 현상은 경기지역에 속해 있는 여주에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를 각 시기별로 개관하고, 또한 이를 여주지역의 정당활동과 관련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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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