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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읍의 특징과 지역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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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읍은 1941년 10월 1일 여주면에서 여주읍으로 승격, 경기도에서는 수원시와 함께 읍으로 승격된 전통 깊은 여주군의 중심 소재지로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는 당시 여주가 인근 지역을 아우르는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음을 의미한다. 지금도 여주·이천이라는 지역 호칭을 사용하는 것으로 볼 때 여주가 당시 인근 지역에서 주도적 역할과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여주읍은 수도권의 젖줄인 남한강을 끼고 한양을 배경으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고 문화를 선도했는데, 조선 후기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안동 김씨 세력과 여흥 민씨 세력이 모두 이곳을 근간으로 했다는 데서도 그 위상을 더욱 뚜렷하고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여주읍은 오랫동안 남한강 뱃길을 이용해 조운을 집결하고 한양으로 접하는 교통 요로로 여강(驪江 : 남한강 줄기로 여주 부분을 일컫는 이름)이 있어왔고, 1972년도에 수려선(水驪線 : 수원-여주간 철도)이 폐철될 때까지 인근 지역 교통과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현재 여주읍은 법정리 19개리, 행정리 41개리 224개반, 49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주읍사무소는 지난 1978년 하리에서 이곳 상리 285번지로 이전했다.

여주읍사무소 행정기구는 2과 6개 팀에 38명이 근무하고 있다. 1998년 10월 8일 행정기구 구조조정 이전에는 공무원 수가 63명으로 직원 1인당 담당 주민 수는 497명이었고, 부읍장제(5급) 하에서 3개과로 운영되었다. 현재는 직원 1인당 1,021명의 주민을 담당하고 있어 구조조정 이전보다 담당 업무량이 2배 이상 늘었다.

여주읍의 인구 추세는 1699년(숙종 25)에는 655호에 남자 1,350명, 여자 994명으로 총 2,344명이었고, 1925년 8,343명, 1935년 9,883명, 1943년 1만 351명, 1949년 1만 4,083명, 1960년 1만 5,302명, 1970년 1만 7,988명, 1975년 2만 46명, 1980년 2만 4,113명, 1986년 2만 5,661명, 1998년 3만 3,793명, 2001년 3만 7,923명 등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편 2003년 12월 31일 현재 12,804세대, 37,788명(가구당 인구 2.95명)으로 도시형 가구 형태(가구당 2.5명)를 띠고 있으며, 현재도 도시화는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도시화 추세를 용도지역으로 살펴보면 일반 주거지역이 5년간 0.8189㎢가 증가했고, 생산녹지가 2.1679㎢ 증가하면서 도시계획지역으로 전체 8.279㎢가 편입, 증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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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