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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역사를 지닌 신륵사 전경
북내면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강 옆에 자리한 사찰 신륵사가 있었다(2007년 오학지구가 여주읍에 편입됨에 따라 신륵사는 북내면 관할에서 벗어났다). 신륵사는 예부터 여강(驪江)의 백미로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명소이기도 하다.
신륵사는 천송리 봉미산(鳳尾山) 끝자락에 위치한 절로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이 절에서 고려말 고승 나옹선사가 열반하여 유명해졌다. 최근 관광객들은 매년 여주도자기박람회 기간과 시기를 맞추어 신륵사를 찾고 있다.
사적 제382호 고달사지 역시 북내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유적이다. 김현준이 쓴 『이야기 불교사』를 보면 “문성왕 2년(840)에 현욱선사는 거처를 여주 혜목산 고달사로 옮겼는 데 사람들은 산 이름을 따서 스님을 ‘혜목산 화상’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곳에서 30년 가까이 선풍을 떨치다가 경문왕 9년에 입적, 경문왕은 ‘원감’이라는 시호를 내렸다”고 적혀있다.
당시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큰 절의 위용을 갖추었고, 사방 30리가 모두 절의 땅이었다. 고달사를 중흥시킨 신라말의 고승이자 고려초의 선승이었던 원종은 고려 태조 왕건의 요청에 따라 고달사에서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다고 한다.
고달사는 우두산과 매봉산을 끼고 앞들 작은 산인 신털이봉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신털이봉은 옛날 스님들이 고달사를 지울 때 신에 묻은 흙을 털다보니 봉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신털이봉은 최시형이 숨어 살았다는 이천의 앵산처럼 조그마한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 차있어 고달사를 찾는 또 하나의 볼거리이기도 하다.
중암리 뒷산의 길은 구불구불 해 오르는 재미가 있는데 그 위에 작은 암자 흥왕사가 있다. 지어진 연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신라 제35대 경덕왕 때 고달과 소달 형제가 있었는데, 고달은 고달사(상교리 위치)를 짓고 소달은 절터를 구하기 위해 백일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소달이 기도를 마친 5월에 지금 흥왕사 자리에 들렀더니 서리가 있었다고 하며, 이곳에 절을 지어 설랭이절, 또는 상왕사라 하였는데 그 뒤에 흥왕사로 고쳤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북내면 신접리 6,600여㎡ 규모 지역에는 천연기념물인 백로와 왜가리의 서식지가 있는데, 마을주민들에 의하면 약 1,000마리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백로와 왜가리는 함께 서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왜가리가 백로보다 몸집이 크다. 백로와 왜가리가 오는 마을은 부자 마을이 된다는 전설이 있으며,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약 50년 전부터 이곳에 와 새끼를 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접리 서식지 중앙에는 약 400년 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주변 참나무에 백로와 왜가리가 번식하고 있다. 그러나 백로와 왜가리의 배설물에 의해 대부분의 나무가 죽어가고 있는 실정이며, 이 서식지에서 약 500m 떨어진 리기다소나무 숲으로 점차 서식지를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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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