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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한국인 경관들
갑오경장 이후의 경찰은 가장 중요한 정치적 도구가 되었는데, 각 아문관제와 동시에 제정되어 종래의 좌·우포도청을 없애고 좌·우순청과 한성오부의 경찰업무를 통합하여 경무청으로 출발하였다. 경찰의 중요성은 변혁기일수록 더하였으나 수도에만 국한되었고 지방에는 파급되지 못하였다. 경무사의 지위는 향상되어 종래의 포도대장이 종2품이던 것이 정2품으로 승품되고 종래 병조에 속했던 것이 내무대신의 지휘를 받게 되어 문관경찰로 변하였다. 또한 종래의 형조에 속하였던 감옥사무를 경찰청에 예속시켰다.
경무청 조직의 특징은 한성오부에 각각 경찰지서를 두었으며 군부에서 문관체제로 변화하였으나 현재처럼 행정관청에 들어가지 않고 독립 관청으로 출발하였다. 그외에도 수도순라에 관하여 각 군문에서 행하던 순라를 폐지하고 경찰청 관하의 경찰이 행하였으며 행형사무와 소송사무를 일원화하여 사법경찰사무에 순라를 도맡은 경찰청은 강력한 기관으로 등장하였다.
1896년(건양 원년)부터 1903년(광무 7)까지 비교적 잠잠한 시기로서 갑오·을미에 외세에 의해 뒤바뀐 관제를 주체적으로 조절하고 대한제국을 칭하며 아울러 국가제도를 공포하여 독립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였다. 경찰관제도 경부시대로 대경무청시대를 거쳐 각 개항과 시장에 경무서를 신설하고, 함경북도 변계경찰서를 개설하는 등으로 현실에 맞추어 나갔다.
을사 이후 새로운 경무청이 등장했는데 그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명칭이 갑오·을미년의 총무국에서 경찰국으로 바뀌었고, 국장정원을 따로 두고 종래의 법제상 없었던 경무과와 신문과가 나타났으며, 남녀 감옥이 분리되고 감옥에 의사가 배치되었다는 것 등이다. 또한 지방의 경찰관서가 이루어져 수도의 경무청 하의 경무서 분서 조직에다 분파 소조직까지 이루어져갔다. 당시에 여주에 신설된 지역과 분파소명은 표와 같다.
의정부를 일본식 내각으로 고치게 한 일제는 경무청마저 동경경시청과 같이 경시청으로 고치고 경관의 계급 칭호도 종래의 경무관·총순·순검을 경시·경부·순사로 바꾸고, 경무서는 경찰서, 분파소는 순사주재소로 개칭하였다. 이때 시행된 경시청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갑오년 이후 경무청이 담당하였던 감옥사무가 제외되었다. 둘째, 경시청의 관할구역이 한성오부 이외에 황궁과 경기도를 포함하게 되었다. 이 제도는 약 7개월 간 시행되다가 소멸되었다.
헤이그 밀사사건을 계기로 고종을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하여 한국을 완전히 무력화시킨 일본은 1909년(융희 3)에는 정치조직에서 이름뿐인 군부마저 폐지시킴과 동시에 사법감옥사무마저 박탈하여 한국정부는 내부·도지부·학부 및 농상공부 등 4부만 남는 초라한 모습으로 변하였으며 경찰권을 박탈당하였다. 그것으로 한국병합의 모든 단계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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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지역 분파소 및 정원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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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