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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수산업은 장기적으로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당시 수산업 인구는 급증하였고, 어업의 영세경영이 급격히 증가함으로써 영세어민의 경제적 상황이 악화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의 영세어업 경영은 약 반수가 농업을 위주로 한 겸업 경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광복을 맞았으나 국토가 분단되고, 남한에는 미군정기로 사회적·경제적 어장 이용질서가 문란해지자 1946년 3월 1일 어업취제규칙을 발표하여 「어업의 면허가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 시행하였으나 효력을 상실하게 되자 1947년 수산당국으로부터 연안어업 정비와 원양어업 장려, 수산단체의 기구일원화, 수산장려금 활용 철저 등을 내용으로 한 대책을 강구하였다. 한편 이때의 수산단체는 어업조합이 169개, 어업조합연합회가 8개, 수산조합이 16개 그리고 수산협회가 있었다.
1953년 9월 9일에 법률 제295호로 「수산업법」이 공포되었고, 같은 해 말 「수산업법 시행령」과 「어업자원 보호법」 등 수산관계 법령이 공포됨으로써 구법령 등을 정비하였다. 1962년 1월 20일에 「수산업협동조합법」이 제정됨에 따라 구 수산단체는 소멸되었고, 어민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게 되었다.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병행하여 수출주도형 경제개발정책의 강력한 추진으로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룬 반면, 인구와 산업의 과도한 도시집중, 지역간 또는 도·농간 불균형, 환경오염과 자연훼손 등 개발 후유증과 경제적인 문제를 초래하였다. 어촌에서도 1980년대 중반까지 수산정책이 증산 지향의 산업위주 정책이었던 관계로 연안어업 및 어촌 개발은 투자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어가수의 감소와 어가소득의 상대적 저하를 가져와 어가수는 1980년 15만 7천 호에서 2001년에는 7만 8천 호로 줄어들었다. 농가소득에 대비한 어가소득은 1980년에 96% 수준에서 2001년도 93%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어촌종합개발사업’계획에 의거 187억 4,200만 원을 투자함으로서 어촌계의 소득증대는 물론 이 사업을 통하여 마을의 미래를 설계하고 협의하게 됨으로써 어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는 계기가 되었다.
1994년부터는 어촌계를 권역(160개)으로 설정하고 1995년부터 사업을 대규모로 추진, 당해연도 21개 권역에 525억 원을 지원하였으며, 2001년까지 109개 권역(완료 85, 계속 24)에 3,265억 3,000만 원을 지원하였다.
1997년에는 해외지원 생산지원자금 3,400억 원을 1993~1996년에는 어항사업의 기본시설 투자금액으로 4,749억 9,900만 원이 투자되었다.
2001년에는 「어항법」에 정한 어항 422개 항(국가어항 105개소, 지방어항 317개소) 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2,158억 2,900만 원이 수산업의 기반 사업액으로 투자하였으며, 수산물 유통개선과 가공산업육성을 위한 비축사업용으로도 농수산물가격 안정기금 722억 5,500만 원을 투자함으로써 수산업의 소득증대에 기여할 수 있는 생산기반을 구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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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종합개발사업 지원 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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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