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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안동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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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김씨(安東金氏)들은 구(선)안동과 신(후)안동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여주에 거주하는 구안동 김씨는 고려중기 몽골의 침략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낸 명장이자 명재상으로 유명한 김방경(金方慶)의 후손들로 현재 흥천면 귀백리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 고려후기에는 김방경의 현손들인 김구용,김제안,김구덕 형제가 모향(여흥 민씨 민사평)을 찾아 김구용은 천녕현(현 이포리)에 유배를 와서 육우당을 짓고 수년간 살았고, 김구덕은 현재 가남읍에 묘가 있다. 조선초기에는 김방경의 8세손 김환이 여말의 충신으로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증조부 김사렴의 유훈으로 선대의 고향인 오근(충북 청원군 오창면)에서 여흥(현 흥천면 귀백리)으로 이거하였다. 김환은 1442년(세종24)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에 이르렀다. 이후 후손들이 20여대째 세거하여 현재 50여 가구가 거주한다. 명종때 무신인 11세손 김공석(金公奭, 1477-1553)은 1507년에 무과에 급제후 함경도 병마절도사(咸鏡道 兵馬節度使)에 이르렀다. 묘는 귀백리 남쪽 구릉에 있다. 12세 문단공 김주(金澍, 1512~1563)의 자는 응림(應霖). 호는 우암(寓庵)이다. 1531년(중종26)에 진사가 되고, 1539년(중종34)에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호당에 뽑혔다. 전라도, 황해도 관찰사 및 개성유수, 대사헌(대사성)을 지내고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1563년(명종18) 선계변무사(璿系辨誣使)로 명나라에 가서 사명을 완수하였으나 그곳에서 병들어 죽었다. 1590년(선조23)에 그의 공이 인정되어 광국공신(光國功臣)3등으로 화산군(花山君)에 추봉되었다. 이황(李滉), 김인후(金麟厚), 임형수(林亨秀) 등과 교유가 깊었다. 시호는 문단(文端)이다. 그의 묘는 귀백리 백양산 절골 우측 구릉에 있다.

安東 金氏 系譜
始祖方慶
2世
3世永煦
4世
5世2男 士廉(號 梧隱)
6世
7世遇周
8世丸(墓 흥천면 귀백리)
9世宗孫(墓 귀백리)
10世城(1451~1487, 墓 귀백리)
11世公亮(1472~1544, 墓 귀백리)公奭(1477~1553, 咸鏡北道兵馬節度使, 墓 귀백리)
12世3男 澍(墓 귀백리)濯(1526~1598, 墓 귀백리)
13世 正男(刑曹佐郞)壽男(1547~1605, 兵使, 墓 귀백리)
14世憙(1567~1635, 長興府使) 晊(昌原大都護府使, 墓 흥천면 상백리)
15世鼎基 益基 泰基允厚 光厚 益厚
16世 銓(=元海益 女) 銑鎬 鏜碕 錫 晭 碻 환 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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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