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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는 정치적 격변의 시대이며 제1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의 시작과 함께 경제 기적의 토대를 마련한 때이기도 하다. 제1공화국은 강력한 반공 국가로서 기틀을 다졌으나 1960년 3·15부정선거로 인한 4·19혁명이 일어나 제2공화국의 민주당 정권이 수립되면서 자유의 물결이 너무 거세 정치적인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5·16군사정변이 일어났다.
또한 학원의 민주화, 중앙집권적인 행정체제의 지방 분권화, 교육의 질적 향상을 골자로 하는 교육개혁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당시 교육과정 개편을 위한 노력이나 향토 학교 운동, 교원 교육 제도 개선 등은 후에 결실을 맺게 되었다. 1961~1963년 사이 군사정부는 조국 근대화를 기치로 인간개조운동을 교육에서 강조하였다. 사회면에서도 재건국민운동 등을 추진하여 학원의 질서와 정상화를 위한 교육에 관한 임시특례법을 1961년 9월 1일 제정 공포하였다. 1963년 6월 26일에는 사립학교법을 제정 공포하였으며, 1963년 2월 15일에는 교육과정을 전면 개편하였다.
제3공화국에 들어와서는 임시특례법에 의하여 정지되었던 교육자치제를 1964년 1월에 도 단위로 부활하고, 민족중흥과 국가발전을 위한 교육개혁이 강조되었다. 1968년에는 중학교 무시험 진학, 국민교육헌장 선포, 대학 입학 예비고사제를 실시하였고, 1968년 말에는 장기종합계획심의회가 제도화되어 1969년 2월에는 장기종합계획안(1972~1986)이 추진되었다.
1961년 12월 31일 교육법의 개정으로 교육자치제가 폐지되어 여주군청 교육과로 편입이 되어 윤춘선 씨가 교육장 직무대리로 취임하였다가 1964년 1월 1일 교육법의 개정으로 여주군교육청으로 독립하게 되었으며, 1964년 3월 20일 강중호 초대 교육장이 취임하였다. 1960년대는 여주에 교육청이 세워져 현대 교육의 토대가 완전히 자리잡게 되었다. 이때는 인구수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그에 따라 학생 수도 자연히 증가하여 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많은 학교들이 설립되었고, 교통이 불편한 산간지역에는 분교장을 설립하기도 하였으며, 기존의 분교장들은 정규 국민학교로 승격시켰다. 또한 중·고등학교 진학률이 점차 높아지기 시작하여 중·고등학교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196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개군면이 양평군으로 편입됨에 따라 개군초등학교 역시 양평군으로 편입되었다. 또한 1964년 1월 1일에는 여주읍 상리 201-29번지에 본관 및 부속건물을 마련하여 여주군교육청이 개청되었으며, 초대 강중호 교육장이 부임하였다. 이 당시의 여주군 초·중·고 학교 현황은 앞의 표와 같다.
한편, 1967년도 교육활동을 보면 일선 장학지도를 160회, 집단 장학지도를 6회 실시하였고, 협의회를 보면 장학계획수립협의회 1회, 교장회의 8회, 교감회의 3회, 연구담당자회의 1회, 과학담당자회의 1회를 개최하였다. 장학행사 면에서는 교육연구발표회 1회, 과학 및 교편물 전시회 1회, 향토생산물전시회 1회, 연구보고회 3회, 학력평가회 1회, 학술경시대회 1회, 종합체육대회 1회를 개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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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설립 및 승격된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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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학교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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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시범학교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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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