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사
-
모바일로 QR코드를 스캔하면
이 페이지로 바로 접속 할 수있습니다.
여주의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참판공파(參判公派)와 안경공파(安敬公派)로 나뉜다. 참판공파와 안경공파는 삼중대광(三重大匡) 벼슬을 지낸 51세 김녕군(金寧君) 목경(牧卿)의 6세손인 56세 진손(震孫)의 네 아들로 이루어진 소위 경사파(京四派)의 하나다. 네 아들의 이름은 영견(永堅), 영서(永瑞), 영정(永貞), 영순(永純)으로 각기 참판공파(參判公派), 횡성공파(橫城公派), 안경공파(安敬公派), 그리고 서윤공파(庶尹公派, 또는 석성공파)의 파조가 된다.
참판공 영견의 6세손 62세 덕승(德承)의 세 아들은 홍경(洪慶), 홍명(洪命), 홍복(洪福)인데 홍경의 둘째아들이 충정공(忠靖公) 우항(宇杭, 1649~1723, 호는 甲峯)으로 우의정을 지냈다. 여주로의 입향은 17세기 후반으로 셋째 김홍복(1649~1698, 호는 東園)에서 시작된다. 원래는 장단(長湍)이 이들의 터전으로 그가 여주목사를 지낸 것이 입향의 계기가 된 듯하다. 그러나 족보를 보면 그의 증손인 66세 형조(亨祚) 때부터 주내면, 즉 여주시 점봉동 웅곡(雄谷)에 묘를 썼다.
안경공파의 경우는 안경공 영정(1437~1509, 묘는 長湍 梅峴里)의 7세손 63세 대민(大敏, 1684~1745)이 용인에서 강천면 적금리(赤今里) 신대촌(新垈村)에 입향하면서 후손이 퍼졌다. 강천면 이호리에 선영이 있고, 가남읍 태평리와 북내면 등에도 분포한다.
『조선의 성』에 나온 자료를 참고하면 김해 김씨는 강천면 적금리에 24호가 산다고 되어 있다.
金海 金氏 先代 系譜 金首露 … 13世 庾信 … 49世 益銛 50世 柱國 51世 2男 牧卿(三重大匡, 金寧君) / 晳卿 益卿 52世 普 53世 到門 54世 覲 55世 2男 孝芬 56世 震孫 57世 永堅(參判) 永瑞(縣監) 永貞(安敬) 永純(庶尹)
金海 金氏 參判公派 系譜 57世 永堅(參判公) 58世 世弘 59世 光壽 60世 2男 希禹 61世 盡善 62世 德承 63世 3男 洪福 64世 3男 宇槩 65세 2男 郁熙 66世 3男 亨祚 67世 正鉉
金海 金氏 安敬公派 系譜 57世 永貞 (安敬公) 58世 世鈞 59世 添壽 60世 3男 希逸 61世 信直 62世 守成 63世 4男 大敏 (入鄕, 墓 강천 이호리) 64世 男夏 65世 明瑞 66世 致祚 龍祚 67世 允鉉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담당자 정보
- 담당부서 문화예술과
- 담당자 조원기
- 연락처 031-887-3582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