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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왕후 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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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太宗)의 비로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민제(閔霽)의 딸이다. 능지(陵誌)에 보면 1365년(고려 공민왕 14) 7월에 개성 철동(鐵洞)에서 태어났다고 기록하였으나 여흥(驪興)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숙하고 아름다우며 총명과 지혜가 예사롭지 않았다. 1382년(고려 우왕 8) 이방원(李芳遠)에게 출가하였으며 1392년 태조(太祖)가 즉위하자 정녕옹주(靖寧翁主)에 봉해졌다. 1400년 이방원이 왕세자에 책봉되자 세자빈이 되어 정빈(貞嬪)에 봉해지고 이해 11월 이방원이 즉위하여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어 정비(靜妃)의 칭호를 얻었다. 왕자의 난 때 남편을 도운 공이 컸다. 1398년(태조 7) 정도전(鄭道傳) 등이 주살될 때 미리 변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때마침 태조의 몸이 불편하여 여러 왕자와 숙직하고 있던 이방원을 불러내어 주의를 환기시켰다. 또 이 일이 있기 10여 일 전에 여러 왕자가 거느리고 있던 시위패를 혁파하고 영중(營中)의 무기를 모두 불태우라는 명을 피해 몰래 무기를 숨겨두었다가 이방원의 군사에게 내어주며 선수를 쓰게 하였다. 2차 왕자의 난 때는 남편의 안위가 걱정되어 직접 말을 몰고 전장에 나가려고 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그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태종보다 2살 위였던 원경왕후는 왕비가 된 뒤에 많은 고초를 겪었다. 태종이 왕이 된 뒤 축첩이 심하자 자주 다툼이 일어났는데 두 사람의 다툼은 단순한 사랑싸움을 넘어 외척의 권력형성과 양녕(讓寧)의 세자책봉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태종 즉위 초부터 협유집권(挾幼執權)의 기회를 노렸다는 의심을 받아온 왕비의 동생들인 민무구(閔無咎)와 무질(無疾), 그리고 뒤에 무휼(無恤), 무회(無悔) 등 4형제가 죽임을 당하고 왕비도 폐비의 위기에까지 이르렀으나 세자와 왕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을 염려하여 실행하지는 않았다. 1418년 세종(世宗)이 즉위하여 후덕왕대비(厚德王大妃)가 되었고 1420년(세종 2) 7월 56세로 죽었다. 소생은 양녕, 효령(孝寧), 충녕(忠寧, 세종), 성녕(誠寧)의 4대군과 정순(貞順), 경정(慶貞), 경안(慶安), 정선(貞善)의 4공주가 있다. 능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헌릉(獻陵)이다.

□ 참고문헌 : 『太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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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