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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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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성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이천(利川), 자는 염윤(廉允)이고 내의령(內議令)을 지낸 서필(徐弼)의 아들이다. 성격은 위엄이 있고 바르며, 삼가하고 상대방을 공경하였다. 서희의 할아버지인 서신일(徐神逸)이 화살에 맞은 사슴을 구해주었는데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사슴은 내 자식인데 그대의 힘을 입어 죽지 아니하였으니 마땅히 그대의 자손을 대대로 재상이 되게 하리라.”며 사례하였다고 한다. 서신일이 80이 되어 나은 아들이 필(弼)이고, 필이 희(熙)를 낳고 희가 눌(訥)을 낳았는데 모두 태사내사령이 되었고 묘정에 위패를 모셨다고 한다. 서희는 960년(광종 11) 3월 과거에 갑과로 급제하여 광평원외랑·내의시랑이 되었고 983년(성종 2)에 내사시랑평장사를 거쳐 태보·내사령이 되었다. 993년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온 거란의 소손녕(蕭遜寧)과 담판하여 이들을 돌려보냈다. 소손녕이 고구려의 옛 땅이 자기네 땅인데 고려가 그 땅을 침식하고 있다고 우기자 서희가 고려는 고구려의 옛 터전을 이은 나라라는 것을 조리 있고 당당하게 설득하여 어쩔 수 없이 거란의 80만 대군이 철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고려는 압록강 동쪽의 여진족을 축출하고 강동6주를 확보하면서 생활권을 압록강까지 넓히게 되었다. 시호는 장위(章威). 묘는 산북면 후리의 상두산(象頭山)에 있다.

□ 참고문헌 : 『고려사』, 『역옹패설(櫟翁稗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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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