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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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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정순(靜純), 호는 지재(趾齋)이고,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아들이며 좌참찬 송준길의 외손이다. 또한 숙종의 비 인현왕후의 오빠이며 고종의 비 명성황후의 5대 조부이기도 하다. 1681년(숙종 7) 생원이 되고 168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가 되었다. 그러나 곧이어 기사환국이 일어나 아버지를 비롯한 일가친척들과 함께 관작을 삭탈당하고 귀양살이를 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로 인현왕후가 복위됨에 따라 세자시강원 설서로 다시 기용되었고, 이어 충청도 관찰사·강화유수·한성부판윤을 지냈다. 예조판서·의정부우참찬을 역임하고 개성부유수로 재직하던 중에 죽었다. 1706년(숙종 32) 의금부지사로 있을 때 유생 임부(林溥)가 세자 모해설을 발설하여 일어난 옥사를 함부로 다루었다고 해서 소론 측의 탄핵을 받아 벼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민진후의 신도비문에 “지재의 키는 보통사람을 넘지 않았으나 정신은 넘쳤고 얼굴빛은 씩씩하나 기개는 온순하였다. 음성은 쇳소리가 폐부를 찔렀다. 또한 홀로 된 누이와 외로운 조카들을 사랑하기가 지극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저서로는 『지재집(趾齋集)』이 있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묘는 가남읍 안금리에 있다. 1899년에 편찬한 『여주읍지』의 명환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숙종실록』, 『도암집(陶庵集)』, 『민진후신도비문(閔鎭厚神道碑文)』, 『여주읍지』(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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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