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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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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이고 자는 자삼(子三)이다. 민시중의 현손이자 민흥수의 손자이고 민백종(閔百宗)의 아들이었으나 민백형(閔百亨)의 계자가 되었다. 1769년(영조 45)년에 음사로 관직에 나아가 양구현감이 되었다. 1779년(정조 3)년 문과에서 장원급제하였고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통정대부에 승차(陞差)되었으며, 홍주목사로 있을 때에는 치민(治民)에 불법 사례가 있었다는 암행어사의 보고로 파직되었다. 1787년 대사간을 거쳐 전라도관찰사 재임 시 종형(從兄)인 민창혁(閔昌爀)의 저리부채(邸吏負債) 사건에 연루되어 관직을 잃었다. 이듬해 사은부사로 청(淸)에 다녀온 뒤 이조참판·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공조판서로 동지사의 정사가 되어 청에 다시 다녀와서 좌참찬을 지낸 후 우참찬을 역임하였다. 글씨에 능하여 황강서원묘정비(黃江書院廟庭碑)를 썼다. 1899년에 편찬한 『여주읍지』의 명환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여흥민씨삼방파보』, 『여주읍지』(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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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