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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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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명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한지(漢之) 또는 시회(時晦)이고, 호는 낙봉(駱峰)·기재(企齋)·석선재(石仙齋)·청성동주(靑城洞主)가 있다. 영의정 신숙주(申叔舟)의 손자이고 내자시정 신형(申泂)의 아들이다. 1507년(중종 2) 사마시에 합격하고 1510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호당에서 사가독서를 하였다. 1513년 승문원박사가 되고 교리·정언·공조좌랑·헌납·지평 등을 역임했다. 1518년 특명으로 대사성이 되었으나 이듬해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조광조의 일파로 몰려 삼척부사로 좌천되었다가 곧 파직되었다. 이어 여주군 점동면 원형리로 추방되어 18년간 칩거하였다. 1538년 대사성에 복직되어 대사간·경기도관찰사·병조참판·대사헌·한성부판윤·형조판서·이조판서를 거쳐 을사사화(乙巳士禍) 이후 공신 3등에 책록 되어 영성부원군으로 추봉되었다. 1553년(명종 8)에 우찬성·좌찬성이 되었다가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 궤장을 하사받았고, 1554년에 사직한 뒤 다음해 죽었다. 문장에 능하여 시문을 많이 지었으며 청렴하고 공정한 인사를 통해 훌륭한 인사들을 많이 천거하였다. 저서로 『기재집(企齋集)』이 있고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1760년에 편찬한 『여주목읍지』의 인물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중종실록』, 『인종실록』, 『명종실록』, 『여주목읍지』(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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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