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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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녕, 자는 주경(疇卿), 호는 난곡(蘭谷)이고, 현감 조하성의 아들이다. 1736년(영조 12)에 문과에 급제하고 이후에 홍문관교리·정언·대사간·대사성·이조와 호조 등의 참판을 역임했다. 1755년 예조참판으로 북도(北道)에 거주하고 있는 향화인(向化人)들의 성관(姓貫)을 조사하는 임무를 맡았고, 1762년(영조 38)에는 사도세자 사건과 관련하여 국문(鞠問)을 받다가 곧 풀려났으며, 1763년(영조 39) 한성부우윤을 거쳐 좌윤을 지내다가 이듬해에 죽었다. 영조는 그가 바다를 건너 사신으로 다녀온 수고를 생각하며 그의 죽음을 애석히 여기고 그 아들이 계속 국록(國祿)을 받도록 배려하였다. 묘는 대신면 무촌리에 있다.
□ 참고문헌 : 『영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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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