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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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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고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백헌(伯憲), 호는 호운(湖雲)이고, 영의정 홍순목(洪淳穆)의 아들이며 홍영식(洪英植)의 형이다. 1866년(고종 3) 3월 춘당대에서 행한 춘도기(春到記)에서 제술 1등을 하여 전시에 직접 응시할 자격을 얻었고, 그해 5월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검열·교리·헌납 수찬, 집의 등을 역임하고, 1874년 평안남도 암행어사가 되었다. 이후 예방승지를 거쳐 여주목사가 되었고 이때 선정을 베풀어 이조참판에 임명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킨 홍영식이 역적으로 몰리자 아버지를 포함한 일가족이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혼자만 실패하고 살아남았다. 1894년 복직되어 여러 차례 관직에 제수되었지만 나가지 않았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분을 참지 못하고 음독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또 실패하였다. 홍만식은 벼슬을 마다한 채 상소 때마다 직함대신에 “미사신(未死臣)”이라 써서 스스로 죄인임을 자처하다가 1905년 여주의 본제(本第)에서 을사조약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내 음독자살하여 순국(殉國)하였다. 고종은 그 충의를 높이 평가하여 참정대신에 증직하고 충정(忠貞)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묘는 흥천면 문장리에 있다. 한편 대신면 천서리 도로변의 산자락 끝 수풀 속에는 1877년(고종 14)에 세운 홍만식의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있다.

□ 참고문헌 : 『고종실록』, 『매천야록』,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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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